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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족노조 만행 해결 없이 민주사회 없다.

귀족노조 계급주의 : 동일노동 반값임금,

시민단체 NGO의 기회주의적 이중성, 범죄성

    깽판노조 그간 행패를 고발한 근로자 (월간지J에서 부분발췌)
    노동계가 점점 세력이 커지면서 노동운동가들이 이제는 정치계로 진출하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국회의원선거는 물론 이제는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 하려고 하고있다.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올 때까지 모두 무장 봉기하자" 라는 구호는 해마다 임투 현장에 어김없이 나도는 전단이다. 그리고 화장실에 나타나는 낙서들. "가자, 북으로 어버이수령의 따뜻한 품으로" (김일성이 죽기 전까지 나붙던 구호) (월간지J97년11월호572쪽) 울산에 가보면 아침이나 저녁 때 길이란 길은 다 차로 덮이고 있다. 울산 공단 내 모든 근로자들이 한 사람이 한 대씩 차를 몰고 나오니까. 늘어나는 차에 맞춰 길을 넓히려면 얼마나 막대한 예산이 들까.. 96년 12월노동법 날치기 통과파동으로 소위 "민주노총"이 주최한 항의데모가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되는 날. 거제 장승포에서, 창원공단에서, 부산에서 그리고 울산에서 우리의 근로자들이 몰고나온 승용차로 경부고속도로는 7시간 동안 마비가 되고 말았다는 보도를 보았다. 아 살맛나는 세상, 우리 대한민국. (97년11월호573쪽)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까지 각 기업에서는 종업원들의 근무의욕 고취, 사기진작, 자기계발, 새로운 정보소개등의 명목으로 보통 3박4일에서 4박5일정도 단체 합숙훈련을 실시하고 노사가 함께 뒹글며 일체감을 조성 하는 교육을 했다. 일에 쪼들리다가도 교육을 받고나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개인에게도 자극을 주어 생산성을 올리는 효과도 거두었다. (578쪽) 87년 6.29이후 노조가 이런 교육을 전면 거부하는 곳이 늘고있다. 첫째 이유는 교육기간 중 회사가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라는 것이고 둘째 이유는 기업이 종업원들의 노동력을 더 착취하가 위해 실시하는 세뇌교육이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 두번째 이유의 배경이 바로 운동권 세력에 물든, 그야말로 세뇌되어있는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회사에서 교육기간 중 일을 시키지 않고도 임금을 지급하고 며칠 동안 별도로 숙식을 제공하며 각계의 전문가들을 불러 좋은 정보까지 제공하는데 이런 배려는 필요없고 시간외 수당까지 지급하라는 주장이 과연 이땅에 함께 살고있는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라 볼 수 있을까. (97년11월호579쪽)
    D중공업이 새로운 승용차 생산공장을 세우기 위해 이 공장에 근무할 사원을 뽑아 앞으로 운영할 생산 라인의 용원을 일본스즈키사에 연수를 보낸 일이 있었다. 이곳에서 성실하고 똑똑한 인원을 선발해서 일본 현지 생산라인에 투입하여 일본인들과 함께 일 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참으로 기특한 오기로 시작했는데 대부분이 3개월 동안 아침마다 코피를 쏟았다는 것이다. 한국과 다른 엄격한 근무시간에 맞추다 보니 과로 때문에 그들의 연수기간이 대략 1 년이었는데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모두 말이 없었다. 그들 중 필자가 잘 아는 사람이 퇴근 후 술 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듣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동안 자신들은 한국에 있을 때 대단히 열심히 일했고 일본의 근로자를 막연히 부러워했는데 막상 가서 부딪쳐 보니 한국의 근로 환경이 그들에 비하면 오히려 지상천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고 이제 한국에 돌아가서는 일본인들에게 지지 않도록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와서 분위기를 보니 자기 혼자서 그랬다가는 우스운 꼴이 될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575쪽) 창원공단의 H중공업에서 있던 일. 어느 날 서울에 있던 사장이 와서 근로자를 격려하고 대화를 나누겠다는 뜻에서, 간부를 시켜 노조 대표와 차 한잔 하자고 요청했더니, 노조 대표의 대답이 "할 말 있으면 사장이 노조 사무실로 오라" 는 것이었다. 사장이 마침 다른 손님이 있어 그러면 퇴근 후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다시 제의를 하니 선약이 있어 안된다는 대답이었다는 것이다. 단체협상이 시작되고 노사대표가 회의를 하면 머리가 허연 아버지나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들 앞에서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노조대표라는 사람들이 맞담배질 하는 것은 예사고 때로는 삿대질과 모욕적인 언사도 다반사가 되었다. ( 97년 11월호 577쪽 중에서) 90년 무렵의 어느 통계자료를 보니 세계 각국의 자동차 생산 실적을 소개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총 생산량을 생산에 참가한 근로자 수로 나눈 1인당 생산대수를 1로 보았을때 미국의 GM이 4.5대 일본의 도요다가 12대의 수치였다. 어떤 자료를 보면 선진국의 근로자들과 우리 근로자들의 1인당 생산실적은 대략 미국의 1/3, 일본의 1/4로 나온다. 그런데 임금수준의 비교는 어떨까. 정확한 통계자료에 의한 비교는 아니지만 미국과 일본의 물가와 생활비를 대비해보면 우리의 임금수준이 오히려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1인당 생산실적은 미국의 1/3, 일본의 1/4인데 임금은 그들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고 한다면 어디가 잘못 되었을까. ( 97년 11월호 570쪽 중에서)
    임금이 인상되고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지는 일이야 누가 마다할까.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임금 인상이 합리적인 과정에서 노사가 인내하면서 합의도출된 결과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북한 경수로 건설현장에 나오는 북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월 1백달러에서 1백50달러라고 하는데, 식당에 그릇 닦는 아주머니도 한달에 최저 90만원에서 1백20만원 사이를 받는데 달러로 환산해 1천-1천3백 달러가 된다. 대기업의 고졸 기능사원들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이 90년부터 2천달러를 넘었고 지금은 2천5백달러를 넘었을 것이다. (570쪽) 각기업은 엄청난 비용을 지출 하고도 노조의 거센 항의에 굴복하여 생산성에 맞지않는 고임금을 지불하다 보니 결국 국제 경쟁력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고임금 등쌀에다 횡포에 가까운 노조의 항의에 두손 들고 아예 공장을 외국으로 옮기고 있는 현상이 타당한 일일까.. ( 97년 11월호 578쪽) 창원공단 입주업체 대부분이 그런 이유로 근로자들에 대해 실시하는 복지혜택이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경우가 맣다. 근로자의 요구를 듣다보니 별 일이 다 일어난다. 노조의 요구로 도서실이 마련된 것은 바람직한 일로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육체미 단련실, 음악감상실, 취미 서클활동실, 테니스코트장과 각종 운동경기장까지 갖춰주었다. 동아리 활동이라고 각 회사마다 사물놀이패라는 것이 조직되어 노사분규만 일어나면 이들이 앞장을 선다. 대개 회사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관리직 사원들은 현장 근로자들보다 근무시간이 길어 정시 퇴근시간이 지나도 보통 한두 시간 더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근무시간을 마친 현장근로자들은 취미활동을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는 시간에 보란듯이 꽹과리를 두들기고 있다. 근래 우리 사회는 우리 것을 찾는다고 사물놀이가 인기를 얻는지는 몰라도 한번 겪어본 사람이면 그 두들겨대는 소음에 넌더리를 치고 이제는 사물놀이패만 보아도 아예 고개를 돌리고 만다. 도서실을 만들어라. 음악감상실을 만들어라, 육체미단련실을 만들라는 요구에 만들어 놓았더니 이용하는 사람은 가물에 콩나기다. (97년11월576쪽)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가물에 콩나기이다. 그럴수밖에. 월급 많이 받겠다. 자가용 있겠다 퇴근하기 바쁘게 자가용 몰고 드라이브 즐기고 술 먹기도 바쁜데 언제 책 읽고 음악감상하고 육체미 단련한다는 말인가. 노동자의 천국은 미국, 일본이 아니라 바로 이땅이 아닐까. 독서실에 가보면 많아야 서너명이고 음악감상실에는 아무도 없고 육체미 단련실엔 많아야 5-6명인데 기업에서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 건물을 짓고 상당한 예산을 들여 운영하는 시설을 겨우 몇 사람만 이용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이런 경비는 결국 제품의 가격상승을 초래하는데 이러고도 미국.일본의 기업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 (97년11월호576쪽) 모르긴해도 세계 어느 나라의 기업에서 종업언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나라가 있을까. 그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을 우대한다고 식사의 질을 높이고 부페식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자기 마음대로 음식을 담아가는데 먹다 먹다 남겨서 모두 잔반통에 버린다. 엄청난 양의 음식 쓰레기가 발생하여 2천여명이 버리는 음식 쓰레기를 전문 수거업체를 불러 처리하는데 전용탱크로리에 담아 창원에서 울산까지 운반하고 울산에서 다시 전용선박에 옮겨 싣고 이 배가 바로 동해 먼바다 공해에서 버린다고 한다. 이 내용을 알고나면 환경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남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터인데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97년11월호576쪽) 주물공장은 쇳물작업이기 때문에 고열이 발생한다. 우리나라 주물공장에는 어디에 가도 대형선풍기가 신나게 돌고있다. 대형 선풍기가 돌면 결국 공장 내의 주물사분진이 날아다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히다치 주물공장 안의 어디에도 선풍기를 볼수 없었다. 만약 한국의 어느 공장에서 이랬다면 그 기업주나 경영자는 "노동자의 땀과 피를 빨아먹는 악질" 로 낙인이 찍히고 행패를 당하지나 않았을까. 몇개 다른 업체의 공장을 방문했는데 어느 공장도 작업장 안에서 대형 선풍기를 돌리는 곳을 본 적이 없다. 그중 새로지은 공장은 부분부분 에어컨 바람을 보내고 있었다. 선풍기 한대 눈에 띄지 않았는데 문득 가정용선풍기가 돌고있지 않은가 - 다시 눈여겨보니 선풍기의 방향은 작업자 쪽이 아닌 기계의 콘트롤러 박스에 맞추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공장) 창원공단내 공장들이 그 큰 대형건물 전체에 에어컨을 가동하고있는 곳도 있고 이제는 부분부분 찬바람을 보내주고 있으며 그래도 여전히 대형선풍기를 쌩쌩 돌리고 있는데도 우리의 근로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하고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좋은 환경이 되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572쪽) 87년 6.29 이후 터져나온 생산현장의 파업은 10여년이 지나면서 방화.파괴등 극단적인 행동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해마다 벌어지는 임금투쟁 단체협상현상에는 어김없이 붉은 깃발에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악질 자본가" 라는 구호가 등장한다. 마산에서 어떤 선배가 스티로폼을 이용해 제품포장용기를 생산하는 회사를 경영했는데 임금 인상 투쟁의 내용을 보았더니 현대자동차와 대기업의 기술분야 사원들과 같은 수준으로 인상하라는 요구를 했다고한다. 원래 성품이 순진하고 나이도 비교적 많은 사람들로 작업 자체도 극히 단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어느 틈에 이들의 뒤에서 교육시키고 선동하고 부추기는 세력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시달리다 지친 선배는 회사의 문을 닫고 파산했다. 이런 사례는 마산 수출 자유지역 안에 있던 회사 중 여러 곳이 문을 닫는 연쇄 파동으로 이어졌다. ( 97년 11월호 570쪽 중에서) 이지역 출신의 유력한 인사가 10년전 30대의 젊은 나이로 이들과 활발한 접촉을 했는데 당시 수출 자유지역 내 꽤나 알려져있던 일본계 전자부품 업체의 근로자들을 부추기면서 "여러분 그 동안 군사정권의 보호를 받는 자본가들에게 여러분들의 신성한 피와 땀을 얼마나 착취 당했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권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여러분 뒤에는 이 XXX가 있습니다. 끝까지 싸웁시다." 라고 선동했다. 당시 이 회사의 현지 책임자로 있던 일본인이 도저히 대화가 되지않아 본국과 상의하고 결국 회사를 폐쇄하고 말았다. 그때까지 극렬하게 투쟁하던 5백여명의 근로자들이 뜻밖에 직장을 잃게되어 서울에 있는 이 사람의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그는 이미 피해버리고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 투쟁에 참여 한답시고 여성근로자 대표가 공장 굴뚝에 올라가 알몸 시위로 경찰,소방차가 동원되기도 했음) (97년11월호570쪽)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tender (미련곰탱이) 날 짜 (Date): 1998년02월07일(토) 21시01분08초 ROK 제 목(Title): Re: 어느 퇴직 근로자가 본 노조의 모습. #6 거기 있었던 사람의 하나로서.. 모조리 사실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에서는 느낀 것을 저도 그 당시에 그렇게 느꼈습니다. 100명 가까이 되는 우리 부서만해도 차없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도 힘들고.. 거의 공짜 기숙사(한달 사용료 2천원)에다가 결혼하면 보증금 조금(100~200만원)만 내면 몇천만원 전세금을 버는 셈이고. 텅텅비는 복지시설... 저야 뭐 가난한 월급쟁이니까 그저 좋기만 했죠. 그당시 과장이 그러다군요. "월급쟁이의 천국"이라고..히히 뭐 직장생활하다보면 더러운 꼴로 많이 보지만..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것보단 훨씬 낫습니다.